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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 / 태 켈러

by Chloe Y 2021. 9. 28.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 - 10점
태 켈러 지음, 강나은 옮김/돌베개

2021년 뉴베리상을 수상 작품에 '할머니', '언니야' 같은 우리말 단어가 나오고, 우리나라의 전래동화의 이야기가 녹아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 번은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드디어 한글판을 읽었다.
호랑이가 나오는 전래동화. 어쩌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서 고리타분하게까지 느껴지던 소재가 이렇게 신선하게 그려질 수 있다니...

1/4만 한국인인 릴리와 샘, 1/2이 한국인인 엄마와 한국인 할머니가 미국에서 토속신앙을 어떻게 지켜가고 있는지 조금 엿볼 수 있었던 점도 흥미로웠다. 할머니는 손 없는 날 이사를 하고, 고사를 지내고, 'knock on wood' 하지 않은 죄책감에 샘은 쌀을 뿌리고...

호랑이 여인에 대한 옛이야기, 그리고 할머니.
할머니의 병을 낫게 하고 싶어 리키와 덫을 만들고 병속 이야기를 풀어줬던 릴리.
원하면 언제나 투명인간이 될 수 있었던, 아니 투명인간이 됐어야 하는 릴리가
단지를 벽에 던져 깨고, 마루가 소리나도록 걸어내려오는 모습으로 변하는 모습.
이 모든 이야기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잘 어루어져서 정말 오랜만에 책을 놓지 않고 읽어내려 갔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원서로 봐야겠다는 것이었다. 한국어 표현이 어떻게 영어로 씌여있는지도 궁금했지만, 문장 하나하나가 너무나 예쁘게 표현이 잘 되어있었다. 읽으면서 머리에 장면이 그려질 정도로... 모두 번역자의 능력인가?
그래서 읽는 도중 소장용 한글책과 원서를 바로 주문... 기대가 된다.

P. 235
˝그런데 내가 도서관 일을 아주 오랫동안 했거든. 그러면서배운 거 하나는, 이야기에선 질서와 정리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거야. 감정이 중요하지. 그리고 감정이 늘 이해가 되는 건아니거든. 그러니까, 이야기란……˝
조가 두 눈썹을 모은 채 잠시 있다가 적당한 비유를 찾아 만족스러운지 고개를 끄덕인다.
“물 같아. 비 같고, 이야기는 우리가 꽉 잡아 보려 해도 언제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리거든.˝

P. 275
화나고 슬프긴 했어도 호랑이가 해 준 그 이야기들을 들은건 잘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들 덕분에 나는 세상이 거대하다고 느끼고, 그래서 마음이 그득 차오른다. 마치 나도 별들의 이야기를 듣고 귀 기울일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어쩌면 슬픈 것들을 숨기는 게 좋다는 할머니 생각은 틀렸는지도 모른다. 지금까지는 할머니가 틀렸다고 생각해 본적이 한 번도 없었다.

P. 302
호랑이가 무게 중심을 옮기고, 줄무늬가 은은히 빛난다.
˝그건 그때 호랑이 여인이 틀렸던 거야. 살다 보니 자기가 호랑이 쪽 자신도 꽤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거든. 그래서 이젠 호랑이 여인도 알아, 우리가 다들 하나 이상의 존재일 수 있다는걸. 강하기만 하다면 우린 가슴에 하나보다 더 많은 진실을 품을 수 있어.˝

P. 323
˝슬픔은 희미해져. 응, 결국에는. 그런데 그리움은..... 시간이 지난다고 없어질 수 있는 건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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